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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I타입 (편지)

1차 / HL / To. 나의 아가씨에게

by 샤_ 2021. 1. 8.

 

 

 

To. 나의 아가씨에게

 

 

 

매일 직접 아침마다 널 깨우며 인사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이렇게 글로 네게 인사하려니까 뭔가 어색하네. 내가 나름 사람 놀리는 것 하나는 꽤 잘하는 편에다가 워낙 뭐든 잘 할 것만 같게 생겼다마는, 글재주는 영 아니라서 말이야. 네 성에 안 차는 편지라도 이해해줘. 처음에는 일주일 휴가라 해서 좀 적지 않나, 싶었거든? 근데 지금은 당장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굴뚝이야. 여긴 놀릴 사람도 없고 같이 놀 사람 없고. 그냥 네가 없으니 영 재미가 없어. 너처럼 반응 좋은 사람은 여태껏 못 봤거든. 아직 사흘밖에 안 지났는데 사흘이 이렇게 기나 싶은 거 있지. 그러고 보니 이틀 전에 길고양이들 놀아주려고 밖에 나갔었는데 웬 고양이 한 마리가 유독 하악 거리더라고. 털은 흰색에 눈은 하늘색인 것부터 뭐만 하면 하악 거리는 것까지. 너랑 완전 똑같은 거야. 그래서 걔랑 해가 질 때까지 놀아줬는데도 끝까지 하악거리더라. 근데 더 웃긴 건 뭔 줄 알아? 그 애가 나 집 갈 때쯤 되니까 어디서 세잎클로버 하나 물어왔더라. 하는 짓이 끝까지 너였어.

 

그게 귀여워서 아껴둔 캔 하나 꺼내줬더니 먹고 바로 가버리더라. 좀 더 놀고 싶었는데, 야박하기는. 또 쓸만한 얘기가 있었나, 아! 그래, 그리고 어제는 어쩌다 쿠키를 얻어서 먹었는데. 음, 내 취향은 아니었어. 반죽 자체가 바삭한 식감이라기보단 브라우니처럼 폭신했는데 안에 박힌 초코칩이 완전 네 취향이더라고. 돌아갈 때 몇 개 사 갈게. 너무 맛있다고 울지만은 말았으면 좋겠네. 그러고 보니 요즘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어? 나 없다고 외로운 나머지 끼니 거르면서 나 기다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나 없어서 외롭기는 하겠다마는 끼니 너무 거르지도 말고, 또 스튜에 버섯 하나하나 건지며 편식하지 말고. 그래야 네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할 내가 네가 좋아하는 쿠키들 사 갈 테니까. 어찌 됐든 어서 일주일이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어. 너는 어떨진 모르겠다만, 네게 장난 치는 게 내 삶의 낙 중 하나니까. 아직 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끼니 거르지 말고, 내 생각만 하느라 시간 허비 하지 말고, 알았지? 글씨 오랜만에 쓰니까 슬슬 손 아프니 이만 여기서 줄여야겠어. 쿠키랑 케이크 사 갈게, 어서 보고 싶다.

 

 

 

from. 아가씨의 집사가

 

 

 

p.s 너 닮았다는 애가 준 세잎클로버 말린 것도 같이 보낼게. 내가 너무 보고 싶을 땐 이거라도 보면서 버텨 봐^^

 

 

 

 

 

***

 

 

 

 

 

오래된 철로 만들어진 우편함에 우편이 온 듯, 덜컹거리는 소리가 제 귓가까지 내리찍었다. 서희는 평소처럼 잠시 정원에 나왔다가 들리는 우편함 소리에 옆에 있던 메이드를 시켜 우편함을 확인했다. 딱히 제게 올 우편은 없었기에 서희는 기지개나 피며 다시 방으로 돌아가려던 때, 우편함 확인을 시켰던 메이드가 서희를 불러세웠다. 메이드는 서너 장의 우편들 사이에서 한 우편을 서희의 손에 올려줬고 서희는 메이드가 물러가자마자 바로 우편을 확인했다. 누가 보낸 거지. 우편을 이리저리 훑어보던 서희의 시야엔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타카?”

 

타카에게서 온 우편이었다. 서희는 그 자리에서 바로 우편을 조심스레 뜯어, 안의 편지지를 꺼냈다. 간단한 안부 인사부터 평소와 같이 자신을 놀리는 타카의 말들과 자신을 닮았다는 고양이 얘기, 웬 쿠키 얘기까지. 평소라면 이런 것 하나 안 쓸 타카가 직접 펜을 들어 썼다는 사실에, 서희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기 한껏 머금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느새 마지막줄까지 다 읽어버린 편지를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되새기듯 읽던 서희는 살짝 접힌 편지지의 끝부분을 펼쳐봤다. 서희가 접힌 부분을 펼치자마자 그 사이에서 웬 말린 세잎클로버가 떨어졌다. 아슬아슬하게 세잎 클로버를 잡은 서희는 부서지지 않게 조심스레 손에 쥐며 접힌 편지지 부분을 확인했다.

 

-p.s 너 닮았다는 애가 준 세잎클로버 말린 것도 같이 보낼게. 내가 너무 보고 싶을 땐 이거라도 보면서 버텨 봐^^

 

서희는 그가 남긴 추신에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다, 제 손에 들린 세잎클로버와 편지지를 번갈아 보았다. 자신과 닮은 고양이가 주워왔다는 세잎클로버를 직접 말리고 잘 쓰지도 않는 편지지를 꺼내 편지를 썼을 타카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저절로 상상됐다. 서희는 그 상상에 결국 웃음을 흘려보내며 우편 봉투에 편지지와 세잎 클로버를 다시 조심스레 밀어 넣었다. 그리곤 그 우편 봉투를 꽤 소중히 품에 넣은 서희는 어서 남은 이틀이 지나 타카가 쿠키와 함께 돌아오길, 지난 사흘보단 조금은 더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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