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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F타입 (연재)

1차 / 공상세계 #01_목적지

by 샤_ 2021. 1. 12.

 

 

 

***

 

 

 

 

 

 

낡은 창틀은 창문을 내리고 올릴 때마다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아슬아슬한 속력을 내는 낡은 차는 조금의 경사라도 있는 구간을 들어설 때마다 버벅거렸고 간신히 핸드폰과 연결한 블루투스 라디오에선 낡은 차와는 어울리지 않는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예진은 조수석에 앉아 차와 연결한 블루투스 플레이 리스트에서 곡들을 선정하다 순간 덜컹거리는 차에 손을 멈췄다. 창문을 한껏 열고 운전하던 이랑은 방지턱 때문에 그런 거라며 어서 노래나 틀라고 예진을 재촉했다. 예진은 이랑이 좋아할 만한 가수의 곡을 틀다가 뒷좌석에 앉아 과자나 주워 먹던 민지에게 한소릴 들었고, 그걸로 둘은 말이 오가기 시작했다.

 

“누가 드라이브할 때 그런 발라드를 듣냐, 그럴 바엔 이 곡 어때?”

“너 말고 아무도 모르는 곡.”

“유명한 곡이거든?”

“그렇게 따지면 그 곡보다 이 발라드가 더 유명하겠다!”

“그냥 닥치고 유튜브 연결해서 틀어, 씨발들아.”

 

예진과 민지는 이랑의 한마디로 바로 목소릴 낮추기 시작했고 결국은 이랑의 말대로 유튜브를 연결해 아무 플레이 리스트나 틀었다. 낡은 차는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일정한 속력을 내며 도로를 내달렸다. 주말도 아닌 평일 낮의 도로엔 딱히 차가 많지 않았다. 몇십 분에 한 번씩 보이는 차 몇 대를 제외하곤 딱히 마주치는 차들이 많지 않았기에, 이랑은 면허를 딴 후 처음으로 속력을 더 높여 내달리기 시작했다. 창틀의 모든 창문을 열고 내달렸기에 그 사이로 바람이 각자의 얼굴에 내리꽂듯 불어왔다. 이랑은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목적지를 향해 운전대를 돌렸다.

 

딱히 거창한 목적지라 할 곳은 없었다. 날이 좋아 갑자기 모여 어디든 드라이브 가자는 말들이 모였을 뿐이었다. 늦으면 근처에 있을 모텔이라도 묵으면 되기에 우선 우린 가장 가까운 바닷가를 목적지로 삼았다. 가까운 바닷가라 하면 웬만하면 다들 가봤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그 바닷가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 딱히 바다가 예쁘다고 소문 난 곳도 아니고 맛집이 있는 곳도 아니고, 각자 바쁜 생활 속에서 굳이 바다를 간다면 서해나 광안리 같은 유명한 곳을 가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처음 들어 서보는 바닷가 행 도로는 조금은 새롭다고 느껴졌다. 산길을 뚫어 만든 터널과 그곳을 지나는 도로의 풍경은 오직 산, 나무, 그냥 초록색들 뿐이었다. 뒷좌석에서 민지와 휴게소에서 사 온 것들을 먹던 혜림은 멍하니 창밖 풍경들이나 바라보았다. 큰 나무 세 그루, 철조망, 표지판, 표지판, 표지판. 표지판? 혜림은 잠시 제 머릿속 어딘가에 두었던 정신을 주워 다시 지나온 길을 돌아봤다. 하지만 달리는 차에서 다시 고갤 돌려 뒤를 돌아봤자 보이는 건 이미 작아진 저 너머의 나무 쪼가리 한두 개뿐이었다. 혜림은 표지판 내용을 자신만 못 본 듯해, 고갤 다시 앞으로 돌리며 물었다.

 

“언니, 아까 지나간 표지판 내용…….”

 

혜림의 말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뭔가 큰 굉음이 차 안의 모든 이들의 귓가를 내리찍었다. 끼이익 하는 소리가 발밑에서 울려 퍼졌고 몸은 오른쪽으로 쏠렸다. 오른쪽 창가 쪽에 앉아있던 예진과 민지의 머리는 저절로 창문 너머까지 내졌고, 운전대를 잡은 이랑은 자신의 손과 함께 오른쪽으로 완전히 비틀렸다. 평소엔 잘 쓰지도 않던 안전벨트는 낡은 차인지라 혹시나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싶어 쓴 덕에 그나마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이 옆으로 쏠릴수록 안전벨트는 복부와 가슴을 압박했고, 그 압박감에 순간적으로 숨이 조였다. 예진은 오른손으로 창틀을 짚어 반동으로 자신의 머리를 끄집어 올려냈다. 뒤에서 그걸 본 민지는 예진을 따라 자신의 머릴 간신히 끄집어 올려냈고, 그와 동시에 오른쪽으로 계속 비틀리며 굉음을 내던 차는 완전히 멈췄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귓가엔 내리찍던 굉음이 옅게나마 남아있었고 조여졌던 벨트 때문에 그저 가쁜 숨만을 토해낼 뿐이었다. 손에 땀이 흥건해진 이랑은 숨을 몰아쉬며 운전대에서 손을 떼기 위해 시선을 다시 운전대 쪽으로 옮겼다. 그러다 이랑의 시야에 무언가가 잡혔다. 분명 지금 이 차 멈췄는데. 분명 차는 멈춰있다. 하지만 이랑의 시야에 들어선 측정계가 가리키는 숫자는 0이 아니었다. 딱 30. 정확히 그 숫자에 머물던 것은 이랑의 시야에 들어오자 점점 오르기 시작했다. 40, 50, 60. 점점 올라가는 숫자에 이랑은 압박감에 안전벨트를 풀려는 민지를 향해 소리쳤다.

 

“풀지 마! 너희 안전벨트 절대 풀지 마!”

 

이랑의 소리침이 끝나는 동시에 아까 들었던 굉음이 다시 발밑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완전히 멈춰 선 것만 같았던 낡은 차 바퀴가 도로가 아닌 살짝 뜯어진 철조망 쪽으로 뒤틀리더니, 이내 그쪽으로 내달려지기 시작했다. 이랑은 놓으려던 운전대를 다시 꽉 쥐고, 도로 쪽으로 운전대를 온 힘을 다해 틀었다. 숫자는 어느새 100을 넘었고 이랑은 아슬아슬하게 나무들만 피하며 운전대를 마구 내리쳤다. 내비게이션은 화면이 갑자기 회색으로 변하더니 딱 한 마디만을 반복했다.

 

-직진입니다. 직진입니다. 직진입니다.

 

그 소리에 이랑은 조수석에 앉아있는 예진에게 내비게이션 꺼버리라고 소리쳤고 예진은 이랑의 말에 한 손으론 벽을 짚으며 중심을 잡은 후, 다른 한 손으론 내비게이션 화면을 눌러댔다. 하지만 아무리 예진이 화면을 눌러대도 내비게이션은 꺼지지도 화면이 전환되지도 않은 채 그저 직진 하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한껏 열어뒀던 창문 사이론 나뭇가지들이 마구 들어왔고 뒷좌석에 앉은 민지와 혜림은 상체를 숙여 나뭇가지를 피했다. 차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고 속력은 어느새 150까지 올라갔다. 이랑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내달리기만을 계속하는 차의 운전대를 잡고 여전히 방향을 틀어버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예진은 전원 버튼을 눌러도 꺼지지 않는 내비게이션을 홧김에 전선까지 뽑아버렸다.

 

그러고 나서야 내비게이션의 화면은 완전히 꺼져버렸다. 정신 사나웠던 내비게이션의 소리가 꺼지고 예진이 다시 시선을 이랑의 쪽으로 돌리려던 순간, 화면이 꺼진 내비게이션에서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전방 200m 앞에 목적지가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손에 쥔 예진도, 뒷좌석에서 상체를 숙여 모든 걸 지켜보던 민지와 혜림도. 온몸에 오소소한 소름이 돋았다. 세 명이 새하얗게 질려버린 머릿속에, 그 누구도 입조차 열지 못한 채 내비게이션만을 바라보던 때였다. 운전대를 주먹으로 마구 내리치던 이랑이 짧은 욕설과 함께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이랑의 비명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세 명은 고갤 들어 이랑과 앞을 봤고 상황을 완전히 인식하기도 전에 차는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엉덩이가 의자에서 붕 뜨는 것이 느껴졌고 차는 완전히 직선으로 추락하는 것이 아닌, 이미 내달려진 속력으로 인해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앞으로 내달려지며 추락했다.

 

더는 비명조차 나오지 않게 될 때쯤이 되니 붕 떠지던 엉덩이가 의자에 내려 찍히듯 앉아졌고 몸은 그 반동으로 이리저리 부딪혔다. 이랑은 간신히 잡고 있던 운전대를 다시 왼쪽으로 비틀었다. 차는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도 못할 정도의 굉음을 내며 뒤틀렸고, 그것이 완전히 멈추게 되어서야 이랑은 운전대에서 손을 놓을 수 있었다.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과 토악감에 넷은 앓는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좌석에 축 늘어졌다. 창문으로 들어왔던 나뭇가지에 목이 꽤 긁힌 듯, 붉어진 목을 한 손으로 감싼 민지가 먼저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민지가 먼저 내리자 이랑도 운전석에서 쓰러지듯 문을 열고 차에서 나왔고 뒤이어 혜림과 예진도 차에서 나왔다. 평소에도 멀미가 심했던 혜림은 차 뒤쪽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가더니 몇 번의 토악질과 함께 속을 게워냈다. 이랑은 얼얼한 손목을 쓸어내리며 숨을 토해냈고, 민지는 나뭇가지에 긁힌 목을 생수로 씻어냈다. 뻐근한 몸에 혹시 어디 안 부러졌나 확인하던 예진은 딱히 이상 없는 몸에 그제야 지금껏 자신이 탄 차를 바라봤다. 분명 절벽에서 추락했지만 차는 어디 하나 긁힘 없이 멀쩡했고 창문으로 들어온 나뭇가지로 목이 쓸린 민지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

 

기적이라고 말하기엔 어딘가가 쎄함이 느껴졌다. 마치 아까 내비게이션 안내를 들었을 때 느껴졌던 소름과도 비슷한. 왜 차는 갑자기 혼자 속력을 내기 시작했고 내비게이션은 꺼지지 않고 계속 안내했던 걸까. 긁힘 하나 없이 말끔한 차를 둘러보던 예진은 내비게이션의 마지막 안내를 떠올렸다. 전방 200m 앞에 목적지. 조금 전 추락했던 절벽에서 여기까지의 거리를 대충 눈대중으로 확인한 예진은 그제야 고갤 들어 앞을 확인했다. 몇 걸음만 가면 끊겨 있는 도로. 그리고 그 아래로 고갤 숙여서 보면 보이는 이 끊긴 도로를 지탱하는 큰 기둥. 그리고 이 끊긴 도로 너머에 있는 도시에 절대 있을 수 없는, 저 너머까지 펼쳐진 큰 숲. 끊긴 이 도로를 둘러싼 절벽들과 숲까지. 예진 한 걸음 한 걸음 끊긴 도로의 끝자락까지 다가가며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제야 예진을 따라 고갤 들어 주변을 둘러본 세 명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곳이 내비게이션이 마지막까지 안내했던 목적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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