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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다. 수련의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누운 자세도, 절 바라보며 페이지를 간간이 넘기는 그의 책장 소리도, 살짝 열린 창 틈새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도. 무엇 하나 불편한 거 없이 편안함 그 자체였다. 원래 사람이든 뭐든 그렇지 않은가. 한없이 편안해지면 실없이 웃음이 흘러나오는 거. 츠유의 입꼬리가 평소보다 더 올라가더니 이젠 입술 사이로 가벼운 웃음을 흘려보냈다. 너무 가볍고 간질거리는 웃음이라 나풀나풀 날아다닐 것만 같은 그런 웃음. 그런 츠유의 웃음을 바라만 보던 수련이 책장을 넘기던 오른손으로 그의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제 허벅지와 그의 뺨에 한껏 흐트러진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이마에서 그 위로 쓸어넘긴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손가락들 사이로 들어와 매끄럽게 흘러내렸다.
간질거리는 웃음을 흘려보내던 츠유의 입술이 뭔갈 찾는다. 그의 왼손이 제 머리카락을 느긋하게 쓸어넘겨 주는 수련의 손을 잡아끈다. 제 얼굴을 다 덮을 만한 큰 손이 눈 앞에 펼쳐진다. 제 손짓에 순순히 움직여주는 흰 손에 입술을 지분거린다. 힘없이 축 늘어져 있던 흰 손이 손목에서부터 손가락 끝까지. 뻣뻣해지고 굳어지는 게 선명히 느껴졌다. 츠유는 제게서 벗어나려는 뻣뻣한 손을 두 손으로 감싸, 더 깊게 제 입술을 지분거렸다. 제 한쪽 눈만을 제외하고 모두 뒤덮어버린 큰 손의 온기가 따스하다.
“……뭐 하시는 겁니까.”
“응? 보시다시피 도장 찍는 중이야.”
“도장?”
“하나가 내 거라는 도장.”
“그런 거라면 굳이 도장까지 찍을 필요가 있습니까. 어차피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줄 턴데.”
아무래도 재능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츠유는 제게 덤덤하게 괜히 설레게 하는 말을 하는 수련을 바라봤다. 본인은 별생각도 없는 것 같지만. 제게 나름 그런 말을 해놓곤 본인은 오히려 입술이나 지분거리는 제 행동에 뻣뻣하게 굳기나 한다. 그 모습이 한없이 귀엽게만 느껴진다. 아주 조금은 웃기기도 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수련의 손바닥에 닿는다. 그리곤 미끄러지듯 올라타더니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입을 맞추고, 다시 내려가더니 이번엔 그의 손목에 입을 맞춘다. 장난스러운 입맞춤에 호흡만이 맴돌던 공간에서 낯간지러운 쪽쪽 소리가 울려 퍼졌다. 츠유는 제 장난에도 말없이 절 내려다보는 이를 올려다봤다. 장난이 영 심했나?
물론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괜히 말 없는 그를 보자니 눈치가 보인다. 그의 손에 한쪽 눈만 내놓고 모두 숨겨버린 츠유가 그의 손을 조용히 감싸 안았다. 말 없는 그에게 괜히 눈치는 보이는데 어이없게도 선명히 느껴지는 그의 뻣뻣한 손과 온기가 눈치 없게 웃음을 짓게 만든다. 미안, 하나. 눈치는 보여도 귀여운 걸 어떡해. 츠유의 입꼬리가 저절로 다시 올라가기 시작한다. 수련은 제 손안에 숨어 한쪽 눈만 내놓고 그 한쪽 눈으로 절 올려다보는 츠유를 내려다봤다. 츠유의 눈꺼풀이 감겼다 떠지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그의 긴 속눈썹의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나름 안 보인다고 생각하겠지만 츠유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는 것도 손바닥 너머로 훤히 느껴졌다.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숨결이 간지럽고 맞닿은 입술이 한없이 부드럽다.
수련은 절 올려다보는 검은 눈에, 천천히 그를 향해 상체를 숙였다. 상체와 고개는 숙어지더니 츠유의 눈가에 가까워진다. 그리곤 그의 눈가에 제 입술을 닿았다 뗀다. 츠유의 긴 속눈썹이 있는 눈꺼풀에도 입을 맞추고 매끄러운 이마에도 입을 맞춘다. 느긋하게 내려가 그의 콧잔등에도 입을 맞추고 말랑한 볼에도 입을 맞춘다. 마치 제게 했던 츠유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해주며 그에게서 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이거 봐, 재능있다니까? 츠유는 제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여기저기 입을 맞추는 수련을 바라봤다. 숨결이 살에 닿고 호흡이 엇갈린다. 의도적으로 제 입술을 제외하고 맞닿을 수 있는 곳엔 입술을 지분거리는 그가 신기하다. 늘 먼저 행동하고 맞닿는 건 제 살이지만, 이상하게 끝에 가면 끝까지 맞닿아있는 건 그의 살이었다.
츠유는 절 여전히 덤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젠 제 턱선에 입술을 지분거리는 수련을 바라봤다. 의도적으로 제 입술을 피하는 그의 입술에, 츠유는 살며시 그에 비해 한없이 작은 손으로 그의 뺨을 감쌌다. 그리곤 느릿하게 제 턱선에 머물러있는 그의 입술을 제 입술 위로 올라오게끔 끌어당긴다. 이 정도면 됐으니 어서 해달라는 부탁. 간지러운 숨결이 맞닿았다 엉킨다. 절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의 부탁에, 짙은 노란 눈동자가 느릿하게 굴러간다. 제 입술 아래에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입술과 제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눈동자. 이것들을 보고 어떻게 더 시간을 끌 수 있겠는가.
살짝 벌어진 입술이 입꼬릴 나른하게 올린 입술을 머금었다. 어딘가 메말라 있던 입술들이 맞닿는다. 사이를 벌리고 내뱉는 숨결에 젖어 든 혀로 그사이를 파고든다. 맞닿은 입술들이 뭉개지고 틀어지는 고개와 함께 비틀리고 짓눌린다. 그 사이로 내뱉는 숨결마저 비틀리는 것이 메말라 있던 입술들을 젖어 들게 한다. 제게서 한시도 떼지 않는 시선에 숨마저 쉬이 내뱉을 수가 없다. 츠유는 틀어지는 고개와 함께 평소와는 달리 꽤 나른한 눈빛으로 절 바라보는 시선에 숨이 막혔다. 그만이 풍겨내는 분위기가 있지 않은가. 그 텁텁한 고풍스러움. 나른하면서도 어딘가 섹시하다고 느껴지는 그의 시선이 그를 향해 내리깐 제 시선을 집어삼킨다.
타액에 젖어 든 혀가 치열을 훑는다. 미끄러지듯 깊게 파고드는가 하더니 제 연한 살을 간질인다. 평소라면 간지럽다며 웃음이나 터트릴 츠유였지만 어째선지 오늘은 그저 웃음기만 머금을 뿐, 웃음까진 터트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세 때문이겠지. 그의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누워있던 츠유의 상체 위로 수련의 상체가 올라가 있다. 올라가 있다는 표현보단 조금은 짓눌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네. 가슴은 압박되는 것만 같았고 입술의 움직임에 따라 조금씩 위로 젖혀지는 고개에 호흡은 불안정해졌다. 츠유는 맞닿았다 떨어지고 그러다 짓눌려 비틀리는 입술 사이로 가쁜 호흡을 토해냈다.
“……하! 흐, 아……!”
이상하다. 숨도 편히 쉬지 못하고 상체는 짓눌려 어딘가 답답하다. 고개는 한껏 치켜 올려진 턱과 함께 위로 젖혀졌고 제 입술은 상대의 입술에 비틀리고 타액에 미끄러지기만을 반복한다. 이 모든 게 이상하게도 싫지만은 않다. 오히려 흥분되어 제 몸 어딘가가 뜨겁게 들끓는 느낌이라면 모를까. 누군가가 제 안에서 바늘로 쿡쿡, 아랫배를 찌르는 것만 같다. 찌르르한 감각이 아랫배에 몰려가는 것만 같다. 이거, 좀 이상한데.
“자, 잠시만, 하나……! 흐하, 잠, 깐…….”
“숨부터 쉬고 말하세요.”
양심적으로 숨 쉴 구멍이나 주고 말해줘. 의도적인지 아닌지. 평소에 하던 키스와는 영 다른 느낌이다. 수련은 늘 츠유와 키스할 때 최대한 츠유에게 맞춰주며 조절하기 바빴다. 뭉근하게 입술이나 맞대며 호흡이나 맞춰주는 그런 입맞춤. 그런데 이건 정반대가 아닌가. 호흡은 숨 쉴 구멍조차 주지 않고 파고들기만을 반복했고 짓눌리는 힘이 강해서 입맞춤만으로도 온몸에 힘이 빠진다. 츠유는 여전히 제게서 시선 한 번 떼지 않고 입을 맞추는 그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절 당장이라도 집어삼킬 것만 같은 눈에 겨우 내뱉은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호흡에 집중할수록 몸은 들썩였고 그 탓에 츠유의 머리는 점점 수련의 허벅지 중앙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입술이 맞닿았다 떨어질 때마다 두 사람 사이론 질척한 마찰음이 흘러나왔다. 입술과 혀는 타액으로 진득하게 젖어 들었고 한껏 젖혀진 츠유의 고개에, 뒤섞인 타액은 저절로 츠유의 목구멍 너머로 흘러 들어갔다. 넘겨지는 타액이 호흡을 막아내니 겨우 숨 좀 토해내려 하면 질척한 입술이 막아낸다. 수련은 당장이라도 꺾일 것만 같은 츠유의 목에 손을 댔다. 그의 목덜미에 손을 얹어 안정적으로 받쳐준다. 두 혀가 미끄러질 때마다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났다. 수련은 절 흐릿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를 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당장이라도 그의 목덜미를 감싼 손을 앞으로 돌리고 싶었다. 천천히 힘을 가하며 짓누르고 싶은 욕망이 제 머릿속을 어질러놨다. 그나마 다행인 거라면, 그가 욕망보다 이성이 더 앞선 자라는 것이다. 수련은 최소한의 이성을 저 아래에서 끄집어올려 츠유의 입술과 자신의 입술을 떼어냈다. 분명 제 호흡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서로의 입술에서 겨우 떨어진 두 사람은 누군가 뒤쫓아오기라도 하는지 가쁘게 숨을 토해냈다. 숨을 들이켜고 내쉴 때마다 흉부가 크게 들썩였다. 수련은 맞닿았던 숨결에 촉촉해진 제 입술과 코끝을 손가락으로 느릿하게 매만졌다.
“……아.”
돌겠군. 적당히 맞춰주기만 할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맞춰준 쪽은 츠유쪽이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수련은 제 품 안에서 힘없이 늘어서 숨을 내뱉는 츠유를 바라봤다. 처음엔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처럼 토해내더니 점점 호흡이 규칙적으로 내어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다행인 쪽인가. 그래도 여기까지라도 끝냈으니까. 수련의 상체가 천천히 내려앉더니 츠유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얇은 티 하나 걸친 몸이 얼굴에 선명하게 닿는다. 규칙적으로 들썩이는 흉부에 그 품에 묻은 얼굴도 함께 움직였다. 이 선에서 끝냈다고 안심할 게 아니었다. 제게 남은 감정이라곤 그를 향한 미안함, 그리고 미안함보다 좀 더 큰 현타. 이것들보다 훨씬 더 크게 질척거리며 남아버린 아쉬움. 진짜 미쳤나 보지.
느릿하게 숨을 토해내는 수련의 머리 위로 손 하나가 올라왔다. 부드러운 손길이 긴 머리카락을 쓸어내린다. 힘없이 툭툭 내려앉는 듯한 손짓이 편안하다. 수련은 제 속에 질척하게 묻어나는 아쉬움에 제 아랫입술을 송곳니로 짓눌렀다. 당장이라도 제 눈앞에 있는 목에 이를 박아넣고 싶다. 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손처럼 그의 머리카락 사이에 손을 집어넣고 싶었으며 으스러지도록 그를 끌어안아 버리고 싶다. 짙은 금안이 느릿하게 굴러간다. 아래로 내리깔아진 눈꺼풀과 함께 긴 속눈썹도 함께 내려가더니 어느새 제 턱선을 매만지는 흰 손에 입술을 묻었다.
“하나.”
츠유는 자신의 손목에 입술을 지분거리는 이를 불렀다. 여전히 남은 이성이라도 끌어올리느라 집중한 수련이 대답한다. 꽤 힘든 듯 미간마저 미세하게 찌푸리며.
“네.”
“하나.”
“한 번만 부르세요.”
“하나.”
“내가 한 번만 부르라고…….”
그는 조금은 신경질적인 말투와 함께 고갤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느새 제 앞에 있는 이의 위에 올라탄 자세. 제 아래에 있는 이가 또다시 제 이름을 부른다. 하나. 평소와 같은 나른한 웃음을 머금은 입꼬리. 그와 함께 한껏 내려간 눈꼬리와 눈썹. 그 안의 검은 눈동자가 절 응시한다. 츠유가 수련을 몇 번이나 부르는 동안 수련은 츠유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제야 마주친 그 짙은 금안에 츠유는 아까보다 활짝 웃어 보이며 제 위에 올라탄 이를 향해 두 팔을 뻗었다. 그러니까, 대충 무슨 뜻인지 알겠지.
“...당신은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 알면서 이러는 겁니까?”
“싫어...? 하나가 싫다면야...”
“...”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가끔 말로 하는 대답이 필요 없을 때가 있다.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츠유의 의사가 확인되자마자 수련은 그의 목에 입술을 파묻었다. 입질이라도 하는 듯 여전히 진득한 입술을 벌려 연한 살을 제 이로 짓눌렀다. 차갑고 흰 손이 얄은 티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중지 끝이 그의 척추를 따라 쓸어내리는가 하면 다른 한 손은 그의 옆구리를 쥐었다 매만지길 반복했다. 얇은 티 너머로 츠유의 옆구리에 비해 큰 손이 도드라졌다. 차가운 손끝이 살갗에 닿을 때마다 온몸에 저릿한 감각이 맴돌았다. 허리는 저절로 뒤틀렸고 호흡은 또다시 가빠지기 시작했다.
숨 쉬세요. 아까와 같은 말이 제 아래에서 들려온다. 여전히 제 목과 턱선에 입술을 지분거리던 이가 제게 말한다. 아까와는 달리 절 배려하는 듯, 느긋한 손짓과 함께. 맞닿은 가슴이 울린다. 누군가가 이 사이에서 북이라도 미친 듯이 치는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엇갈렸던 호흡은 점점 맞춰졌다. 쿵쿵쿵. 여전히 엇갈리는 심장 박동이 제 귓가에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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