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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카, 이거.
절 부르는 부름에 자연스레 고갤 들었다. 올라간 시선 끝엔 제게 꽤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과 그 손안에 있는 또 다른 익숙한 것 하나. 아야카의 시선이 키타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 본다. 대충 이게 뭔지는 알겠지만 설명은 해달라는 눈빛과 고갯짓. 그 눈빛과 고갯짓에 키타의 몸이 천천히 내려앉는다. 아야카가 앉은 소파 옆자리에 앉은 그가 제 손에 들린 것을 아야카의 손에 쥐여줬다. 꽤 정성스레 포장된 초콜릿 세트. 아야카의 손끝이 달달한 향이라도 벌써 감지한 듯 조금 빠르게 포장지를 풀어헤쳤다. 두꺼운 종이 뚜껑을 여니 여러 모양의 초콜릿들이 아야카만을 위해 진열되어 있었다. 코끝엔 벌써 달달한 향이 맴돌고 어떤 초콜릿엔 조금 쌉싸름한 향까지 나는 걸 보니, 완벽히 제 취향에 맞춰 고른 초콜릿임을 아야카는 확실했다.
“오늘 발렌타인데이기도 하고 전에 데이트할 때 근처에 새로 개장한 초콜릿 가게 한번은 가보고 싶다고 했었잖아. 그거 생각나서 한 번 사 왔어.”
“세상에, 그게 언제 말한 일인데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어? 원래 있던 감동이 배가 돼버렸어.”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사실 나도 맛은 안 봤어. 맛있을지 모르겠다.”
“키타가 사준 초콜릿들은 다 맛있었어. 그리고 이건 향부터가 어서 맛있으니 먹어줘! 라는 향이야.”
그건 또 무슨 향이야. 키타의 입술 사이로 실없는 웃음이 새어 나온다. 웃음과 함께 눈꼬리와 눈썹도 한껏 내려간다. 아야카가 좋아하는 키타의 웃음. 아야카는 절 향해 웃는 키타와 제 허벅지 위에 올려진 초콜릿 박스를 번갈아 봤다. 평소 달달한 걸 좋아하는 아야카를 위해 키타는 가끔 마트나 이런 초콜릿이나 사탕 같은 수제 가게가 새로 생기면 늘 뭔갈 하나씩은 사 왔었다. 그래서인지 어째 조금은 무드 없이 담백하게 건네는 초콜릿이 오히려 아야카의 눈엔 귀엽기만 했다. 그저 평소처럼 초콜릿 하나 건네는 것뿐인데 어째 조금은 쑥스러워하는 듯한 키타. 그런 귀여운 키타의 행동에 아야카는 절 향해 미소를 지어주는 키타를 바라보며 함께 웃어줬다. 괜히 장난 하나 던지며.
“그래도 발렌타인데이인데 영 무드 없어, 키타.”
“무드?”
“응, 무드.”
제게 단어를 되묻는 키타를 향해 고갤 끄덕이며 초콜릿 박스에서 초콜릿 하날 꺼낸다. 동그란 모양에 위엔 화이트초콜릿과 아몬드 가루가 뿌려져 있는 초콜릿. 살짝 벌어진 아야카의 입술 사이로 동그란 초콜릿이 들어간다. 딱 만져봤을 땐 뭔가 냉장고에 있다가 온 것처럼 딱딱할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입 안에서 제 이가 초콜릿을 짓누르자마자 동그란 초콜릿이 그대로 부드럽게 으깨졌다. 적당히 단내가 나길래 이건 평범한 맛이겠거니 했는데 살면서 처음 먹어보는 부드러운 달콤함이 아야카의 입 안에 퍼진다. 이건 좀 무드 없어도 되겠는데. 초콜릿 자체가 무드인 것 같은데. 아야카가 초콜릿을 집었던 손으로 입을 가리고 감탄할 때, 그 옆에 앉아서 화이트초콜릿 하나 집은 키타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무드, 무드, 무드…….
무드가 뭔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단어를 아는 것과 그것을 사용하는 법을 아는 건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물론 키타는 ‘무드’라는 단어는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 그걸 사용하는 법은 모른다. 아야카의 장난 하나에 괜히 무드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빠져버린 키타는 결국 제 옆에서 말과 모든 감탄사가 뭉쳐진 탄성만 내뱉는 아야카에게 물었다.
“아야카, 무드 있다는 건 어떤 거야?”
“……어, 그러게.”
진짜 그러게. 사실 아야카도 무드라는 단어는 잘 알지만 딱히 본인이 사용해본 적은 없다. 이제껏 연애하며 무드라는 단어를 본인이 써본 적도 딱히 받아본 적도 없으니. 굳이 뭔가 예시를 들자면 이벤트 날에 서프라이즈로 뭔갈 준비해서 준다든가, 분위기 잡고 키스를 한다든가……. 음, 답 없네. 서프라이즈라면 나름 키타도 무드에 맞춘 급인 건데. 아야카는 자신이 내뱉은 장난에 꽤 진심으로 고민하는 키타를 흘끗 쳐다봤다. 한참을 고민하는 듯한 표정으로 입 안 화이트초콜릿을 밀어 넣는 그. 진지한 표정으로 초콜릿을 입에 넣는 그의 모습이 웃기면서도 귀엽기만 하다. 사야카는 터져 나올뻔한 웃음을 꾹 밀어내며 제 입꼬릴 한껏 올려 웃었다. 자연스레 몸을 키타를 향해 옆으로 돌리고 허벅지 위에 올려뒀던 초콜릿 박스는 소파 앞 테이블에 두며.
“사실 나도 무드에 대해서 잘 모르긴 하는데, 이런 게 아닐까?”
아야카의 양손이 뻗어지더니 키타의 볼을 감싼다. 따스한 볼과 손끝에 닿는 귀가 부드럽다. 키타의 볼을 잡은 손이 그의 얼굴을 끌어당기고 자신의 상체는 살며시 숙인다. 단숨에 가까워진 두 입술. 이미 초콜릿을 먹은 입술에선 달달한 향이 한껏 풍겨왔고 아직 입 안에 초콜릿이 있는 입술에선 미세한 달달한 향이 새어 나왔다. 뭔가 그와는 어울리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향. 아야카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살짝 틀어지더니 그대로 키타의 입술에 제 입술을 부드럽게 짓눌렀다. 입술이 맞닿고 느릿하게 짓눌러지자, 자연스레 두 입술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미세하게 새어 나오던 달달한 향이 키타의 입술이 벌어지자마자 제 머리를 어지럽힐 정도로 짙게 풍겨왔다.
수제 초콜릿 특유의 짙은 달달한 향과 그에게서 나는 편안한 섬유유연제 향. 그의 볼을 잡던 손이 힘없이 흘러내리더니 그의 어깨 위에 팔을 두고 그의 목을 한껏 끌어안는다. 벌어진 두 입술이 서로의 입술을 머금고 진득하게 맞닿았다 떨어진다. 키타의 입술을 머금고 그의 입 안으로 제 혀를 밀어 넣는다. 그의 치열과 연한 살을 훑은 혀에 단내가 진하게 묻어난다. 제게 느릿하게 파고드는 아야카에 키타는 잠시 몸이 굳는가 하더니 자연스레 아야카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그의 허리에 얹어진 팔에 힘이 가해진다. 제게 올라타라는 듯한 힘. 그 힘에 아야카의 몸이 잠시 힘없이 들리더니 키타의 허벅지 위에 내려앉는다.
아야카의 엉덩이가 키타의 허벅지 위에 닿고, 그 위에 앉느라 벌어진 다리는 그의 옆구리에 닿았다.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평소처럼 입을 맞추고 껴안을 뿐인데. 제 안쪽 허벅지에 그의 단단한 옆구리가 닿아서 그런가. 잠시 당황하더니 이젠 제 아랫입술을 이로 아프지 않게 짓누르며 절 올려다보는 눈 때문인가. 아님 그에게서 잘 나지 않는 짙은 달달한 향이 이질적이면서도 꽤나 어울려서 그런가. 아야카는 제 기분이 점점 이상해지는 것의 완벽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괜히 그를 더 힘껏 끌어안았다. 절 힘껏 끌어안는 아야카의 몸에 키타의 몸은 저절로 뒤로 밀려갔다. 그의 등이 완전히 소파 등받이에 닿자, 두 사람의 몸이 완전히 맞붙을 수 있었다.
타액으로 젖은 두 혀가 뒤엉킨다. 두 혀가 미끄러지듯 이리저리 굴러가면 그사이에 낀 초콜릿도 함께 굴러갔다. 누구의 것인지조차 이젠 알 수 없는 타액이 뜨거운 숨결과 입 안에 녹아든 초콜릿과 뒤섞였다. 숨을 쉬기 위해 입 안에 차오르는 진득한 타액을 넘길 때마다 녹아버린 초콜릿도 함께 넘어갔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야릇하면서도 질척한 소리가 끊어질 때쯤, 적나라한 소리보다 더 야릇하게 느껴지는 가쁜 호흡이 흘러나왔다. 뜨거운 숨결이 벌어진 서로의 입술 사이로 흘러 들어가고 상대의 입술과 입가에 그대로 맞닿는다. 딱 달라붙은 두 가슴에 가쁜 호흡과 함께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쿵쿵쿵. 평소라면 안 들릴 큰 심장박동 소리까지.
아야카의 허리를 감싼 키타의 손이 점점 힘없이 풀어진다. 그러더니 아야카의 얇은 티 안으로 손이 들어가고 그의 옆구리를 제 큰 손으로 매만진다. 아야카의 옆구리를 거의 다 쥐어버린 큰 손이 따스하다. 차분하게 내려앉은 얇은 티가 키타의 손 모 양을 그대로 본떴다. 그의 손이 어딜 쓸어내리고 어딜 짓누르고, 어느 손가락으로 간질이는지. 장난스레 키타의 윗입술을 머금던 아야카의 입술에 힘이 가해지더니 그의 윗입술을 제 송곳니로 짓누른다. 그가 아픈 건 싫으니 아프지 않게, 앙앙 물어본다. 그의 입술을 물고 아직 남은 입 안의 초콜릿을 그의 입 안으로 넘겨줄 때마다 그의 코와 제 코가 툭툭 닿는다. 아야카는 제 티만큼이나 차분하게 내려앉은 그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넘겨줬다.
키타의 앞머리를 쓸어넘기니 그의 하얀 이마가 그대로 드러났다. 아야카의 입술이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때마침 제 날개뼈를 중지와 검지로 뭉근하게 매만지는 키타의 손짓에 호흡이 잘게 떨렸다. 짧은 탄성이 입술 사이로 힘없이 새어 나온다.
“아……!”
저절로 치켜진 턱 끝에, 키타는 아야카의 턱선에 진득한 제 입술을 묻었다. 키스 마크를 남기듯 입술을 움직여대지만 힘은 넣지 않은. 제 날개뼈를 감싼 큰 손이 따스하고 부드럽다. 제 입술과 콧잔등, 이마까지. 천천히 입을 맞춰주는 입술이 다정하다. 절 바라보는 눈과 제게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붉은 뺨과 귓가는 사랑스럽다. 키타는 절 향해 입꼬릴 올려 웃어주는 이를 제 눈에 한껏 담아냈다. 입 안에서 달달한 초콜릿향이 난다. 이젠 다 먹어버린 초콜릿의 끝 맛을 향으로나마 되짚으며 아야카를 제 품에 더 깊게 끌어안는다. 저보다 작은 품이 따스하기에, 붉게 물든 제 뺨과 귓불은 식을 줄 몰랐다.
“이런 건 영 무드가 아닌가?”
키타의 품에 조용히 안겨서 호흡을 가다듬던 아야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애초에 입을 맞춘 순간부터 무드는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졌었다. 그렇기에 이제 와서 무드를 찾아 봤자인걸 둘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야카의 장난스러운 질문과 절 향해 입꼬릴 한껏 올려 웃는 모습에 키타는 느긋하게 그를 따라 입꼬릴 올려 웃었다. 여전히 식을 줄 모르는 뺨과 귓불을 이제 와서 숨기려는 듯, 아야카의 어깨에 얼굴을 깊게 묻으며.
“무드보단 이 가게는 화이트초콜릿이 훨씬 더 맛있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
제게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고 제 어깨에 얼굴이나 묻은 주제에 답지 않게 은근히 능글맞은 말을 하는 키타가 귀여웠다. 결국 아야카는 터져버린 웃음을 마구 터트리며 제게 안긴 그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이젠 달달한 향이 제게 안긴 그에게서 나는 건지 제 입 안에서 나는 건지, 아야카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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