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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A타입 (~1,500자)

1차 / 독백 / 공중전화_20.11.14

by 샤_ 2021. 1. 8.

 

 

 

 

 

나는 이젠 몇 없는 낡은 공중전화 박스 안에 들어갔다. 하늘색의 공중전화 박스 안에는 쇳내가 진동하는 회색 공중전화기가 하나 있다. 나는 한 번 잡기만 해도 쇳내가 손에 배일 것만 같은 수화기를 잡았다. 아무도 사용 안했는지, 아님 날씨가 추워서인지. 나는 차가운 수화기를 귀에 대고 천천히 기억 속에서 간신히 생각해낸 번호를 차례대로 눌렀다. 딸깍거리는 버튼 소리가 열한 번 울리자, 수화기에서 익숙한 벨소리가 들렸다. 한참을 이어가던 벨소리가 뚝 끊기는 소리와 함께 그보다 더 익숙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여보세요?”

 

나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제 귓가에 내리찍듯 들려오자, 온몸에 힘이 풀려 나른해지는 몸을 천천히 차가운 유리 벽에 기댔다. 흘러내리는 빗물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은 나는 수화기와 전화기를 연결해주는 줄을 검지로 배배 꼬며 어서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한 번만 더 말해주길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보세요 라는 말을 한 번 더 한 목소리는 조금 올라간 톤으로 한 번 더 입을 열어줬다.

 

“누구세요?”

 

나는 목소리의 질문에 입을 뻐끔거리며 그저 전화선을 검지로 배배 꼬기만을 반복했다. 그러기를 얼마 안 지나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안 들렸고 목소리 대신 끊긴 통화음만이 나의 귓가를 맴돌았다. 나는 규칙적으로 통화음을 내보내는 수화기를 품에 안고 쪼그린 제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품에 안은 수화기의 규칙적인 통화음이, 마치 살았을 적의 제 심장박동과도 같게 느껴졌다. 나는 그저 남은 통화음이 끊길 때까지 수화기를 품에 끌어안고 헛된 미련의 숨을 내뱉길 반복했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통화음보단 조금 느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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