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뒤틀린다. 다일은 간신히 준 힘을 발목으로 지탱하며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뻗는 걸음마다 발이 뒤틀리고 시야가 잠식한다. 다일은 절 둘러싼 총구들을 향해 두 팔을 벌려 턱을 위로 향해 치켜들었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총구의 끝이 그를 따랐다. 그는 그런 그들의 시선을 한껏 받으며 여전히 뒤틀리는 발과 함께 앞을 향해 나아갔다. 마비된 후각에 들어찬 굳어버린 핏물과 진득하게 눌리는 살점. 다일은 그런 제 살점을 혀끝으로 밀어내며 충혈된 눈동자를 크게 굴렸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목구멍을 간질이는 쇳가루 섞인 안개. 그는 쇳가루에 긁힌 제 목구멍이 토해내는 피를 온전히 흘려보내며 가녀린 두 손으로 제 목을 쥐었다.
나의 신을 죽였다. 그토록 경배하던 저만의 신을 이 손으로 죽였다. 다일의 새하얀 눈썹이 크게 들썩였다. 그러다 눈썹은 위에서 아래로 일그러지듯 움직였고, 벌어진 입술과 함께 입꼬리가 제 고개와 함께 말려 올라갔다. 웃음기 머금은 입에서 희열에 가득 찬 높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딘가 뒤틀려 이명과도 같았던 작은 웃음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잠식된 시야가 완전히 저 아래까지 끌려갔다. 온몸이 불규칙적으로 들썩인다. 쇳가루를 들이킨 목구멍에서 불안정한 기침이 마구 터져 나왔고, 기침은 피에 덮여 나와 절 둘러싼 총구들을 더럽힌다.
철컥. 쇠와 쇠가 맞닿는 소리가 들린다. 다일의 충혈된 백안이 위에서 아래로 굴러가더니 소리의 주인을 향해 내려앉았다. 두 손으로 제게 총구를 내민 여자가 절 향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내뱉는다.
“제시아 다일.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여자의 말에 다일은 웃음기 머금은 입꼬리를 찢어질 듯 올렸다. 마지막으로 할 말, 마지막, 마지막……. 다일은 위로 치켜들었던 턱을 내리며 자신의 목을 쥐던 손을 바라봤다. 제 흰 피부가 안 보일 정도로 비릿한 것에 물든 두 손을 느릿하게 가슴 위에 얹었다. 빠르게 뛰는 심장과는 달리 느릿한 손짓의 끝엔 잠식된 시야 속 흐릿하게 보이는 신의 형상이 서 있었다. 다일은 제 앞에 선 신의 형상에 눈꼬릴 부드럽게 휘어 웃으며 떨리는 호흡을 내뱉었다. 긴장으로 떨리는 호흡이 아닌 흥분에 가득 찬 호흡을 몰아쉬며.
“신은 이제 나만의 것이야.”
완전히 이성을 잃었군. 다일의 앞에 선 여자의 중얼거림이었다. 여자는 온 얼굴 신경을 일그러트리며 충혈된 빛 잃은 눈에서 흐르는 것을 흘끗 쳐다봤다. 여자는 제 앞에 선 이성 잃은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을 향하던 총구의 끝을 하늘을 향해 올렸다. 탕. 짧은 발포 음이 흐릿한 안개를 뚫고 치솟았다. 여자는 다일이 그토록 불러대는 신의 형상이 있을 곳에 발포 음을 울리며 그에게 일그러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일의 뒤틀린 세상과도 같이 어딘가 뒤틀린 어투로. 그를 따라 느릿하게.
제시아 다일. 당신을 모리아 아슈 총리 살인 사건 범인으로 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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