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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A타입 (~1,500자)

1차 / 독백 / 환영_20.12.02

by 샤_ 2021. 1. 8.

 

 

 

폐허가 된 고향에서 널 찾는 건 내 계획 속에 있지 않았다. 생사도 모르는, 어쩌면 내가 지금 찾는 것이 너의 시체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것 또한 내 빼곡한 수첩 속에 적어놓지도 않았다. 나는 시체를 덮은 시체들 속에서 너와 닮은 시체들을 골라냈고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손을 뻗어 너의 흔적을 찾아내려 애썼다. 하지만 넌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널 찾기 시작한 지 오늘로 27일째다. 나는 너덜너덜해진 박스와 신문지로 만든 잠자리를 치우고, 너의 집에서 겨우 찾아낸 너의 하늘색 가디건을 걸쳤다. 얼마 남지도 않은 생수통의 생수를 한 모금 들이키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대충 올려묶고, 허공을 바라보며 손톱이나 뜯어대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쳤다. 하룻밤을 보낸 지하철역에서 벗어나 지상으로 나오니 옛 모습이라곤 하나 없는 나의 고향이 보였다.

 

나는 너와 함께 집에 갈 때마다 들리던 빵집을 곰팡이나 핀 바게트를 씹어대며 지나쳤다. 그리고 골목으로 들어가 너와 함께 월급날마다 찾아갔던 바를 남이 두고 간 듯한 생수로 입을 헹구며 지나쳤다. 이후로 너와 함께 갔던 옷가게, 너의 단골 가게였던 스튜 집, 네가 내게 꽃을 선물할 때마다 찾았던 꽃집까지.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지나쳤다.

 

세상은 안개로 가득했고 그 속에서 가끔 환영까지 보이기도 했다. 라디오는 안 듣기 시작한 지 오래였기에 그 환영이 내가 미쳐서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탁한 안개의 부작용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나는 환영으로 보이는 뻔한 수많은 너를 뚫고 지나갔다. 지속된 환영은 눈만이 아닌 귀까지 흔들어놨다. 저 멀리서 들리는 너의 목소리와 마치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듯한 너의 목소리까지. 수많은 너의 환영과 환청을 지나치며 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진짜 너를 찾기 위해 피로 떡진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갔다. 한 보도를 지나갈 때마다 나는 곧 다 써가는 나의 수첩에 작대기를 그어냈다.

 

나는 발밑에 걸리는 모든 시체를 뒤집어 얼굴을 확인했고, 얼굴을 확인하기조차 힘든 시체들이면 약지라도 확인하여 네가 꼈던 것과 같은 반지를 낀 손가락을 찾아댔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사람들이나 나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람을 찾는 듯한 사람들의 얼굴과 약지까지 하나하나 다 훑어봤다. 해가 막 뜨기 시작한 시간부터 달이 가장 높게 뜬 시간까지. 나는 쉬지 않고 너의 이름을 불러대며 너를 찾아 헤맸지만 오늘도 너를 찾지 못했다. 나는 마치 낮에 봤던 길거리에서 머리카락이나 쥐어뜯으며 주저앉아있던 사람들처럼, 주저앉아 내 손에 들린 작은 칼을 쥐고 허공을 바라봤다.

 

 

네가 내 앞에 서 있다. 나는 떨린 아랫입술을 제 이로 짓누르며 말없이 널 끌어안았다. 사랑한다느니, 미안하다느니, 어디 있었느냐느니. 그런 말 하나 없이 그저 칼을 쥔 제 손을 안쪽으로 꺾은 채 널 한껏 끌어안았다. 제 목에서부터 머리끝까지 뭔가가 뜨겁게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두 반지를 낀 제 약지를 다른 한 손으로 감싸며, 더 깊숙이 두 손으로 너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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